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파이 외잘란 (문단 편집) === 인천 유나이티드 FC === [[SV 베르더 브레멘]], [[함부르크 SV]], [[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]], [[볼로냐 FC 1909]] 등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알파이는 새로운 도전을 원했고 그 다음 행선지는 뜻밖에도 '''[[K리그]]의 신생구단 인천 유나이티드'''였다. [[안종복]] 단장은 창단 감독이었던 로란트 감독과 함께한 자리에서 “내가 알파이 외잘란을 영입해 오겠다.”라고 포부를 밝히자 로란트 감독은 당연히 반색했다. 그리고 안종복 단장은 며칠 뒤 진짜로 계약을 성사시켜 돌아왔다. 계약기간은 2년, 연봉은 80만 달러로 신생구단으로서는 초대형 계약이었다. 당시 알파이는 엄청난 커리어의 소유자였기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충분했고, 기대감도 상당했다. 알파이는 기자회견에서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준 열정 가득한 응원문화에 큰 감명을 느껴 K리그 행을 결정했다고 밝혔고[* 나중에 K리그로 이적해 온 뒤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'근데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월드컵 때 있었던 그 관중들과 뜨거운 응원은 어디로 갔는가?' 라고 물었다고 한다.] 본인 말고도 이름난 선수 몇 명이 K리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립서비스(...) 까지 했다. 하지만 2004년 개막전 [[전북 현대 모터스]]와의 경기에서 전북의 [[에드밀손]]의 '''아킬레스건을 끊은 위험한 태클'''을 보여 순식간에 논란을 만들기 시작했다. 에드밀손은 이 부상으로인해 다음 시즌에 결국 은퇴했다. 그리고 다른 수비수들([[이상헌(1975)|이상헌]], [[김현수(1973년 3월)|김현수]] 등)과의 호흡 역시 부족하여 잔실수가 있거나 부진하는 모습이 있었다. 알파이는 8경기에 출장해 경고 2회와 퇴장 1회를 기록하며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으며 [[전남 드래곤즈]]와의 경기에서 퇴장 당한 것이 그게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.[* 참고로 그 경기가 철거 전 [[숭의야구장|구 숭의공설운동장]]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.] 사실 그 전부터 알파이는 자신이 유명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갈등을 자주 일으켰다. 알파이는 다른 선수들과 코치진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훈련에 무단 불참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.[[https://www.sports-g.com/2013/05/31/%EC%9A%B0%EB%A6%AC%EB%8F%84-%EC%9E%88%EB%8B%A4-k%EB%A6%AC%EA%B7%B8-30%EC%A3%BC%EB%85%84-%EA%B8%B0%EB%85%90-%EC%9B%8C%EC%8A%A4%ED%8A%B8-%EB%A0%88%EC%A0%84%EB%93%9C11|#]] 이후에 [[임중용]]이 그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. 결국 8경기 출전에 그친 채 일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났다. 이적료는 120만 달러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